추억 수박서리의 추억을 소환하다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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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더위가 최고조에 달하던
삼복더위의 여름밤,
뒷동산 모정에는
어김없이 모깃불 연기가
매케하게 피어 오르고,
어스름 구름에 가려진
달빛마저도 흐릿한
초저녁 어둠이 밀려 들 즈음,
개구장이 친구들과
건너 동네에 있는
수박밭으로 향했다.
하교길에 잘 봐두었던
할아버지네 수박밭 이랑을 따라
슬금슬금 기어가서,
잘 익은 수박 한 덩이씩
얼른 따들고
되돌아 오는 것이 목표다.
늘상 말썽을 도맡아 오던
마을의 개구쟁이들에게
수박서리 정도는
누워서 떡먹기 만큼
쉬운 일이었다.
혹여
원두막에서 잠이 든
밭주인 할아버지께서
눈치를 채고
"어떤 놈들이냐?"고
고함이라도 치시면
평소 약속된
작전에 돌입하곤 했는데,
할아버지의 엄포에도
아랑곳 하지 않고,
줄행랑이 아닌
밭고랑을 헤집고
뛰어 다니는 것,
수박덩쿨은
한 번 상하면
더이상 성장이 안될 뿐 아니라,
수확이 안되어
농사를 망친 다는 것을
너무도 잘 알고 있던
개구쟁이들이다.
할아버지께서 목소리를 높이며
달려오실 땐
줄곧 이 방법을 사용하여
할아버지의 애간장을 녹였었다
할아버지께서도
밭을 온통 망가트려
농사를 망치느니
차라리
서리를 조용히 마치고
무사히 돌아가 주기를
바랄 수 밖에
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.
"이놈들아, 먹을 만큼만 따고 조심해서 나가거라"
채념하신 할아버지의
나즈막한 목소리를 들으며
킥킥대며
개선장군처럼 수박밭을 나오던
그 철부지들...
그렇게
수박 한 덩이씩 옆구리에 끼고
돌아 나올 때
짜릿했던 그 스릴감을
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.
그렇게 서리를 해온 수박을
동구밖 똑다리에 모여 앉아
주먹으로 깨어
한 입 가득 배어 물면
"아~ 달콤한 꿀맛~
그렇게 서리한 수박은
그 어느 수박보다
더 맛이 있는 꿀맛이었다.
개구쟁이들의 짓꿎었던
서리의 추억은
수박과 참외 서리에
그치지 않는다.
깊은 밤에
친구집 담장을 넘어
토끼와 닭, 오리를
쥐도 새도 모르게
잡아오기도 했고,
누구네집 제삿날이면
장독대에 준비해 둔 음식을
쌔비쳐다 먹기도 했으며,
동구밖
고구마밭 덩굴을 모두 뒤져
고구마 서리로
불타는 밤을 보내기도 했었다.
그리고 그날밤 '거사'에는
밭이나 동물의 정보를
가장 확실히 알고 있는
주인집 아들이 꼭 끼어있곤 했었다.
♤♤♤♤♤♤♤
이제
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그시절
여름밤 수박서리의 추억을
소환해 보며,
본격적인
삼복더위의 시작을 알리는
초복을 넘겼다.
복날이 되면
개구쟁이들끼리 모여
농담처럼 키득거리던 그 말,
"오늘이 멍멍이와 닭들의 기일이랑께" 하며
킥킥대던
그시절의 추억은
오늘도 어김없이 소환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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